현충일
오늘은 제68회 현충일입니다.
현충일은 1956년 6월 6일에 처음 지정되었습니다. 6월 6일은 조선시대에 병사들의 유해를 안장하던 날이었고, 6.25전쟁으로 가장 많은 장병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정부는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전쟁의 아픔을 채 묻기도 전인 1956년,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는 컴퓨터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1956년 9월 14일, IBM에서 약 5MB의 용량을 가진 최초의 하드디스크 '305 RAMAC(이하 라막)'을 발표했습니다. 지금이야 5MB는 모바일 사진 한 장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큰 용량의 하드디스크였습니다.
이 제품은 그 기능과 용량으로 인해 컴퓨터 업계에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IBM은 이 하드디스크를 컴퓨터 업계에 혁명을 일으킨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자료 임의 접근'이 불러온 혁명
1956년 이전 기록 장치라고 해봐야 천공 카드, 자기테이프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라막 한 대는 천공 카드의 64,000장에 해당하는 정보를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용량 크기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큰 혁신이었지만, 라막의 진정한 가치는 용량보다도 '자료 임의 접근(Random Access)' 기술에 있습니다.
앞서 사용하던 천공 카드와 자기테이프는 순차적 데이터 저장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데이터를 찾기 위해서는 전체 저장소를 순차적으로 검색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특정 데이터를 액세스(접근) 하려면 매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저장소로서의 가치를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라막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자료 임의 접근' 방식을 적용하여 특정 데이터에 접근하는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방식은 컴퓨터의 사용성과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데이터베이스, 트랜잭션 처리, 시뮬레이션 등에 유용하게 사용됐으며, 이로 인해 컴퓨터는 단순 계산 도구에서 정보 처리 및 관리 도구로의 전환이 시작됐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역할로 인해 컴퓨터 혁명의 일부로 라막은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1956년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현충일은 1956년에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때의 한국 기술 발전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사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그때 당시의 한국 기술 발전 수준은 감히 평가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입니다.
오랜 식민지 생활로 인해 자주적인 기술 발전을 이루기 어려웠고, 그나마도 전쟁으로 인해 인프라는 모두 무너진 상황이었습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었기에 교육이나 연구에 투자할 여력조차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세계 최하위권의 기술 수준이었습니다.
70년 후
현충일이 지정된 이후 약 7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기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반도체 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메모리 부문에서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7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발전입니다.
사실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현충일이 지정된 년도에 어떤 기술적인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글을 작성하다 보니 새삼 대한민국이 정말 빠른 속도로 발전을 해왔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자긍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 모든 발전 이면에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열사들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다시 한 번 그분들의 헌신을 기리고 추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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